[歷代名醫醫案97] 權道의 醫案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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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97] 權道의 醫案③
  • 승인 2007.07.2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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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道(18세기경) : 621호 참조

■ 제목 : 脚氣案

■ 내용 : 日本人 醫師 河澄正實(字는 伯榮, 號는 桃圃, 攝州尼城사람)이 1719년 11월 상순에 朝鮮人 醫師 權道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소인에게 자식이 있는데 갑오년(1714년) 출생입니다. 점점 자라 4살이 된 해 봄에 다리가 갑자기 아프더니 밤에 熱이 나기를 이틀을 하였습니다. 의사들이 모두 다리가 부러진 것이라고 하여 안팎으로 섭양을 하였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에 獨活寄生湯, 八味地黃丸, 大防風湯, 舒筋立安散 등을 복용하였고 온천욕을 20여일하였지만 역시 효과가 없었습니다. 마침내는 다리가 부어 이듬해 정월에는 살이 썩고 고름이 나오는 증상이 시작되어 50일 정도가 지났습니다. 이에 內托하는 약재를 복용하고 外用膏藥을 붙여서 겨우 치료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살집이 좋고 기운이 세서 앉아 있으면 건강해 보이는데, 걷는 것은 여전히 불편하였습니다. 지금은 오른쪽 팔뚝이 부어올라있는데, 아직 고름이 잡히지는 않았습니다. 영내의 모든 의사들에게 진찰하였으나 모두 어찌하지를 못하였습니다. 어진이(훌륭한 의사)가 있어 좋은 방법을 하나 알려주어 건강해질 수 있다면 소인이 평생토록 여한이 없을 듯합니다.”

이에 權道가 勝濕飮子라는 처방을 제시하였다.
“勝濕飮子는 黑丑二兩 맨처음거른흑축가루 5돈, 白丑二兩 맨처음거른흑축가루 5돈, 甘遂五錢 밀병에 싸서 구운 것, 이것을 메밀가루 1냥반과 함께 물로 섞어서 떡을 만들어 3돈크기로 잘라 밥증기에 익혀 매번 1개씩을 빈속에 茶淸과 함께 씹어 복용하고 설사가 날 때 까지를 기준으로 합니다. 이 아이는 膏粱厚味와 지나친 보호로 인해 濕熱이 三陰에 머물러서 脚氣가 생긴 것인데, 강한 약이 아니면 치료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氣血이 아직 성숙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약을 반드시 세 번 나누어서 아이의 상태를 보아 시험삼아 써보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桑韓唱酬集』 권1)(번역은 함정식의 것을 따름)

■ 설명 : 『桑韓唱酬集』은 1719년(享保 5년)에 조선통신사 일행이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 일본인 의사들이 조선사신 일행이 묵고 있는 숙소를 찾아와 조선 사신과 의관들 사이에 주고받은 문답을 정리한 것이다. 이 醫案은 3권중의 첫 번째에 해당하는 卷一에 나오는 醫案이다. 日本人 醫師 河澄正實은 자신의 자식을 치료한 경험을 겸손한 자세로 이야기 하면서 權道의 자문을 구하고 있다.

■ 변증분석 : 『東醫寶鑑』에서는 “脚氣의 질환은 모두 氣實하여 죽게 되니, 한사람도 약물을 복용하고 虛해져서 죽게 되는 경우는 없다”고 하였다. 이것은 각기병을 진단하는 기초지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 의사 河澄正實은 자기 자식의 각기병을 단순히 虛症으로 보고 獨活寄生湯, 八味地黃丸, 大防風湯, 舒筋立安散(舒筋保安散을 잘못 기록한 듯함) 등을 처방하고 있다. 權道가 勝濕餠子를 처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濕熱이 三陰經에 침범하여 痼疾化된 각기로 보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 아이의 살집이 좋고 기운이 세서 앉아 있으면 건강해 보인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實證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 치료분석 : 權道가 제시한 勝濕飮子는 “勝濕餠子”의 誤記임이 분명하다. 이것은 權道가 적어준 것을 잘못 옮겨 적어서 생겨난 현상임이 분명하다. 『東醫寶鑑』 脚氣門에는 勝濕餠子라는 처방이 나오는데, 權道가 설명하고 있는 것과 내용상 거의 大同小異하다. 『東醫寶鑑』에 나오는 본 처방의 설명에 “脚氣가 오래되어 정강이가 표주박처럼 부어오른 것을 치료함(治遠年脚氣足脛腫如瓜瓠者)”라고 씌어 있다. 그 어린 아이를 濕이 三陰經에 침범하여 생긴 實證으로 보고 이와 같은 처방을 사용한 것이다.

金南一
경희대 한의대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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