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남북민족의학 학술토론회 참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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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남북민족의학 학술토론회 참가기
  • 승인 2007.01.05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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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 목표, 준비부족, 불성실한 북측태도

실로 햇수로는 4년, 시도로는 네 번째 만에 이루어진 ‘토론회’였다. 북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회의(민화협)와 남측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마련한 ‘조선적십자종합병원 신경, 호흡기병동 준공식’ 행사의 일환으로 구성되어 2006년 12월 18일에서 21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된 이번 행사 중 본 토론회는 12월 19일 오후 3시에서 5시까지 양각도 호텔에서 남측의 대한한의사협회와 북측의 조선의학협회가 주최하는 행사로 진행되었다.

남측에서는 박동일 동의대 한의대 교수, 한의협 김한성(사무부총장)·김기상(비서실장) 씨, 한의학연구원 이정화(연구원)·한창연(공보의, 한의학연구원 파견근무) 씨, 의료기 업계에서 임시덕(신우메디칼 사장) 씨, 그리고 본인을 포함하여 모두 7명이 참가하였다.
이번 방북 일행의 단장인 엄종희 대한한의사협회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한국 한의사와 미국 침구사의 상호 자격 인정 문제가 불거지는 바람에 참가하지 못했고 이밖에 다른 두 사람도 참가하지 못했다.

■ 북녘의 과학화와 현대화 그리고 주체화

북녘의 거리에는 다양한 구호가 많은데, 그 중에서도 ‘선군정치’(모든 문제에서 군사문제를 가장 앞세운다는 원칙)의 구호가 눈에 띄었다. 최근 북녘의 입장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또 하나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과학화, 현대화, 주체화’라는 구호였다. 사실 이 구호는 이미 1946년 김일성종합대학이 만들어지면서 김일성의 혁명 사상과 근대과학이론으로 무장된 간부 양성을 목표로 했을 때부터 시작된 것이어서 그리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남측의 복지부를 중심으로 일부 한의대에서 진행하고 있는 ‘과학화, 현대화, 세계화’라는 구호와 너무나 유사한 것이어서 눈길을 끈 것이다.
여기에서 남북 모두 과학화는 서양의 근대 과학을 의미하는 것이겠고 현대화는 넓게는 상품화, 좁게는 자본화를 의미하는 것이겠다. 북측의 과학화는 기존의 洋診韓治와 최근의 경락을 신경계와 동일시하려는 태도에서도 잘 나타난다. 여기에서 남북의 차이는, 남측에서는 세계화로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정책의 흐름에 포함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면 북측은 주체화로 그것을 적어도 구호상으로는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겠다.

■ ‘토론회’의 문제점과 과제

「남북 민족의학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토론회’는 북측에서는 현철(고려의학과학원 부원장)과 과학원 소속 박사 등 10여명이 참가하여 「고려의학에서 침구학의 발전」, 「고려의학 지식기지 조성을 위한 연구」, 「은행잎 제제를 만들기 위한 연구」 세 편이 발표되었고 남측에서는 「한의학의 인식론적 특징-洋診韓治의 문제를 중심으로」, 「전통의학 지식자료 현대화를 위한 남북 협력방안」, 「한의약 연구개발 사업의 현황과 전망」, 「공공보건의료체계 속 한의학의 현황과 전망」이 발표되었다.

원래 토론회가 성공하려면 먼저 분명한 목표와 그 목표에 맞는 발표가 이루어져야 하며 토론을 위한 시간과 분위기(주제에 합당한 토론자의 참석과 사회의 토론 유도)가 조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토론회’는 목표부터가 너무 추상적이었고 그나마 가장 중요한 주제발표를 남북 모두 하지 않았다(북측은 아무런 준비 없이 간단한 인사말로 대신했다).

남측의 경우, 주제발표는 준비되었지만 발표자가 불참하더라도 최소한 대리 발표를 했어야 했다. 더욱이 일반발표의 경우 북측의 발표는 너무 무성의했고 토론을 위한 시간과 분위기는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번 방북의 목표가 형식적으로는 토론회의 성사였고 내용적으로는 상호 교류를 위한 기반 조성(상호이해와 신뢰의 구축)과 구체적 교류를 위한 협정의 체결이라고 한다면 이번 방북의 성과는 한의학/고려의학 전공자가 공동으로 자리를 같이 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이런 결과가 나온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사전준비(토론회를 위한 사전 조율 및 협의 내용 포함)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책임있는 발언을 할 사람이 참가하지 못했다는 점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또 하나 북측의 불성실한 태도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북측의 입장에서 굳이 불성실함에 대한 변명을 한다면, 이번 ‘토론회’가 적십자 병동 준공식의 한 프로그램으로 끼워져 있어서 보조행사 정도로 인식되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토론회를 위한 준비에 충실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는 앞으로의 교류에서 어떤 형식을 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는 문제다.

한편 이보다 한 달 전인 9월 26일, 평양에서 한국침술연합회와 고려의학과학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제1회 평양 통일침뜸 학술토론회는 (사)남북학술교류협회에서 마련한 자리로, 해외유출문화재 반환이나 동해의 영문 표기 문제 등 매우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문제를 놓고 역사학 등의 다양한 전공자가 참가하는 학술대회의 일환으로 이루어졌고, 남측에서는 침구사를 포함하여 100여명의 인원이 참가하고 북측에서도 70여명의 고려의사와 관계자가 참가하였다고 한다.

진정한 남북 교류가 이루어지려면 상호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 모두 서로를 지원/피지원의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번 모임에서 남북 모두 이런 관점에서 완전히 자유로웠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남북의 교류는 정치적 행사가 아니라 실질적인 통일을 위한 교류가 되어야 하며 그 내용에 있어서도 통일 뒤의 사회를 염두에 둔 것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한편 교류의 대상도 고려의학과학원만이 아니라 김일성종합대학이나 평양의과대학, 지방 등으로 넓힐 필요가 있으며 매년 북녘에서 열리는 ‘전국 고려의학부분 과학토론회’를 남녘의 전국 한의학학술대회와 함께 진행하는 방안도 추진해 볼만하다. 실질적인 남북의 교류가 이루어질 제3회 남북민족의학 학술토론회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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